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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식탁

오늘의 일기 2018.10.25 13:58

미사 다녀오던 길에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가 저녁모임에 들고 갈 두부지짐과 메밀전병을 테이크아웃 하였다. 이웃한 빵가게에 들러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둥그런 치즈빵도 한 덩어리 샀다. 고소한 내음 풍기는 부침개와 갓 구운 빵 들고 버스 타면 기사 아저씨와 승객 모두 허기져서 화나실 듯해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.

잠시 후 도착한 택시 조수석에 웬 아주머니 한 분이 타고 계셨다.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택시 2인조 강도단인가. 잠시 긴장했으나 택시 아저씨가 본인 아내라고, 다른 일행 없으면 앞좌석에 함께 타고 가도 괜찮을지 물으셨다. 

애어멍한테 간만에 대학캠퍼스 드라이브 시켜줄 겸 옆에 태우셨단다. 그러자 옆자리의 아내분이 그게 아니라 실은 자기가 요즘 우울증이 심해서 애아빠가 일 나갈 때 항상 함께 다닌다 하셨다. "그런 이야기는 밖에서 하지 마라게" 만류하는 남편 어깨를 쓸며, 뒷자석의 나를 향해 "민폐이긴 해도 이 사람 나 때문에 이렇게 애쓰니 좀 이해해주세요" 부탁하셨다.

하나도 민폐 아니라고 나는 답했다. '부러운걸요' '아름다워 보여요' 같은 이야기는 드릴 용기가 나질 않아 (그리고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) 어휘를 고르고 고르다 그냥 "어릴 적에는 택시 합승도 엄청 많고 그랬는데요 뭐" 하였다.

아저씨는 "합승 아는 거 보니 손님 보기보다 연식 있으시네"라며, 혹시 학생들 가르치는 분인가 물으셨다. 그리고는 우리 학교 부근 옛 화장터와 거기서 출몰한다는 도깨비 귀신 일화를 들려주셨다. 나 역시 어느 선생님이 목격하셨다던 도깨비 놀음에 관해 말씀드렸다. 그렇게 좁은 숲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무서운 이야기 주고 받자니, 어릴적 친구네 집 작은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"오싹오싹 공포체험" 함께 읽던 정다운 기억이 났다.

아주머니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, 원래 무서운 이야기는 온돌방에서 귤 까먹으며 해야 제 맛이라며 조수석 서랍의 귤을 몇 알 꺼내어 주셨다. 답례로 난 내일 아침에 우유와 함께 드시라며 품에 안고 있던 치즈빵 봉투를 내어드렸다. 

이튿날 아침식사로 저녁모임에서 싸주신 김치부침개를 뎁혀 귤과 함께 먹었다. 그러면서 치즈빵과 우유로 이 섬 어딘가에서 아침식탁 차리고 계실 택시 아저씨네 부부를 떠올렸다. 

그날 아침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바램들과 더불어 "그 두 분이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게 해주세요"의 청을 하나 더 기도 안에 넣었다.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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